한 미화/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실장

 
 
 
 
<파이트 클럽>
지은이/척 팔라닉
옮긴이/최 필원
펴낸곳/책세상
값/7,500원·236쪽

<파이트 클럽>은 우리나라 소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여자들에 의해 길러진 남자들의 해방구를 그렸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평범하고 왜소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샐러리맨 잭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불면증을 해소하기 위해 불치병 환자들의 모임을 기웃거리던 중 잭의 아파트가 까닭 없이 폭파된다. 갈 곳이 없어진 잭이 영상 기사이자 웨이터 노릇을 하는 타일러와 같이 지내게 되며 이야기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급진전된다.

타일러가 시키는 대로 타일러의 얼굴에 주먹질을 하며 시작된 둘의 싸움은 한마디로 치고 받고 싸우는 모임인 파이트 클럽을 태동시키기에 이른다. 두 사람의 싸움을 구경하러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며 싸움이 구경꾼들에게도 전파된것. 이 와중에 그토록 잭을 괴롭히던 불면증은 완전히 사라진다.

잭과 타일러는 아예 지하 바에 파이트 클럽을 차리고 여기에 다수의 화이트 또는 블루 칼라 노동자들이 모여든다.

파이트 클럽에서 구원을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던 <파이트 클럽>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지만 서른 살 먹은 아이와 다름없었던 잭이 자유분방하고 통제 불가능한 카리스마를 지닌 타일러를 만나며 강철 같은 남자로 변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타일러를 만나기 전 잭은 화가 나거나 일상이 만족스럽지 못할 땐 방구석을 치우거나 자동차 실내 장식을 새로 꾸미는 것으로 불안과 불만을 해소하며 끊임없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왜소한 남자였다. 물론 잭만 그런 것은 아니다.

파이트 클럽에 모인 남자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을 알 수 없는 존재로 살고 있다. 그러나 파이트 클럽을 한 번이라도 경험하면 키만 커다란 연약한 남자에서 나무를 깎아 만든 조각처럼 탄탄한 육체를 지닌 남자로 변한다. 잭을 비롯한 남자들은 파이트 클럽을 통해 자신들이 구원받았다고 느낀다. 어른이 되기 전에는 아버지와 싸웠다면 파이트 클럽에서는 자신의 남성성과 드디어 싸워 만나게 된다.

문명에 대한 조소와 대리만족

파이트 클럽을 이끄는 타일러가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힘을 보여 주는 것, 그리고 세상을 폭파해 역사와 문명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거다. 처음에는 남자들끼리 치고 받는 싸움으로 시작된 소설은 어느덧 타일러의 지시하에 벌어지는 통제할 수 없는 세상 파괴로 치닫는다. 물론 독자들을 배려한다면 결코 결말을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 만큼 극적인 반전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한가지 힌트를 귀띔한다면 현대판 <지킬박사와 하이드>쯤으로 생각하시길.

이 소설은 척 팔라닉의 첫번째 데뷔작이지만 북아메리카권의 젊은이들로부터 컬트에 가까운 지지를 받았다. 이런 유형의 소설은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대중문학 장르의 단골소재다. 우리나라 순문학에서 폭력을 소재로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쳐낸 작품이 많지는 않다. 지방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주먹들의 세계를 다룬 성 석제의 <왕을 찾아서> 정도가 폭력이 난무하는 건달소설에 그치지 않고 훌륭한 문학적 소재로서 그것을 승화시켰던 대표적인 작품이다. 적당한 흥분, 냉소적 통찰, 음흉스런 유머와 재기 발랄한 문체가 조화를 이뤘던 <왕을 찾아서>는 새로운 문학적 감각을 지닌 작품으로 주목받았었다.

문학의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는 요즈음 척 팔라닉의 소설을 다시 보게 되는 건 강력한 남자의 모습에 대한 대리 만족, 문명에 대한 조소 그리고 일상의 탈출구로서뿐만 아니라 폭력을 소재로 이만큼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샘이깊은물> 20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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