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영수(재즈 칼럼니스트) 사진/이 성균(콤마스튜디오)

 
 
 
 
아이엠에프를 계기로 특수 계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재즈를...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유행은 있기 마련이다. 유행이란 곧 삶의 순환이요, 실존의 가치를 확인하는 과정이라 하면 너무 거추장스러운 표현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분명한 현상이라고 해야 한다. 특히 예술의 세계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장르는 아무것도 없는 까닭에 더욱 이 말은 신빙성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만이 예술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상대적인 표현으로 추함이 있기에 아름다움이 있고, 아름다움이 없기에 추한 모습도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지극히 주관적인 사유와 절제된 미적 감각을 교묘하게 절충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예술인을 명인으로 만드는가 하면 별볼일 없는 엉터리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양극의 표현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 점이 바로 유행이 만들고 있는 허구의 세계요, 본질을 잃어버린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땅에 아이엠에프가 오기 전 언젠가 글쓴이가 한 잡지를 통하여 한국이란 나라에서는 왜 재즈가 번성할 수 없고, 한때의 사회 현상에 가까운 풍선껌 같은 유행이 일어났을까를 맹렬히 비판하고 인정함으로써 잠시 독자들의 공감을 얻은 적이 있다. 결국 이 말은 잠시 지나치는 어떤 통과 의식과 같은 사실을 공감했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이를 계기로 그나마 특수 계층에서만 소유하고 있던 재즈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함께하게 되었고, 팝음악계의 숨통을 트기에 이른다. 대단하고 특별한 음악도 아니면서 마치 어느 수준을 넘어선 마니아만의 세계인 양 거드름을 피웠던 것이다. 이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이 바로 재즈바이다. 서울의 압구정동과 홍대 앞을 포함한 신촌 일대를 중심으로 전국 대도시에 여러 개의 재즈바가 신장개업을 하여, 이를테면 주머니의 여유가 있는 부류를 중심으로 귀족음악으로 전락하는 우를 범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나라 재즈바의 어제와 오늘을 알아보고 아울러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유명 재즈바를 살펴보도록 한다.


재즈 마니아들의 보금자리

 

1978년 초겨울로 생각하는데, 신촌역 앞 목욕탕 골목 2층에 재즈싱어 박 성연 씨가 자신의 재즈 보금자리 "야누스"의 문을 열면서 신촌 쪽의 음악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매일 라이브 공연을 한 것은 아니지만 박 성연 씨 스스로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재즈스탠더드와 발라드를 부르고 있었다. 물론 연습을 겸하면서 찾아온 손님들의 요청에 따라 성심 성의껏 연주하였고, 레코드를 통하여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어렵던 원판들을 힘껏 울려주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뒤에 야누스 동호회와 야누스 동우회의 협력으로 다달이 한 차례 정기 콘서트를 시작하였다. 이때 이곳을 출입한 사람들이 결국 오늘 한국의 재즈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누구라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뮤지션과 평론인, 애호인들이 아우러졌으며 열악한 환경과 빈곤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아니하고 재즈를 사랑한다는 단순한 명제 아래 모여들었다. 소문이 소문을 만들어 결국 그 곳에 몰려드는 팬들을 소화하지 못하고 야누스는 동숭동 대학로로 이사하게 된다. 지하에 넓은 공간을 마련해서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다. 이때 벌써 젊은 층의 팬들이 재즈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장소도 그이들을 수용하기에 힘에 부쳤는지 야누스는 이화여대 후문에 보다 나은 환경을 마련하여 새로운 멋을 부려보기도 전에 경영상의 문제로 다시 표류하다가 지금 자리잡고 있는 청담동에 안착을 했다. 야누스는 지금까지 재즈 팬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오래 된 재즈 클럽이다.

1976년 초에 정식으로 개점한 이태원의 재즈바 "올 댓 재즈"가 있다. 실제 그전에도 영업은 하였지만 그 존재가 미미하였다. 그러나 개점한 뒤 지금까지 이태원이라는 지역적인 이점과 역사를 자랑할 만큼 이를 충분히 활용하여 미8군에 근무하는 아마추어 재즈 뮤지션으로부터 프로까지 망라하였고, 우리나라 뮤지션들이 라이브를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한 공연을 마친 세계적인 뮤지션들의 "애프터아워"가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 관광을 위해 방문한 일본 재즈 뮤지션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은 한국 재즈계를 지탱해 온 정 성조 씨의 콘서트가 10년을 넘기고 있고, 또 미국에서 공부하거나 유럽에서 배운 뮤지션들도 귀국하면 이 무대를 통해서 실력을 과시할 정도로 잘 자리매김한 훌륭한 재즈바이다. 미국과 우리나라 뮤지션들이 어우러져 벌이는 실력 대결 또한 재미있는 요소이다. 그리고 올댓 재즈는 일본의 재즈 팬과 뮤지션에게도 널리 알려져 한국을 여행할 때 빠지지 않고 거쳐가는 명소가 되었고, 일본 여행 안내 책자에도 실릴 정도이다. 요즈음은 엔세대들이 많이 드나들면서 퓨전 계통 뮤지션들의 연주들도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진정으로 재즈를 사랑하는 이는 음악의 장르에 구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위의 두 곳뿐만 아니라 서울 청담동에 "원스 인 어 블루 문"이 있다. 처음에는 모 재벌의 아들이 취미 삼아 "카멜롯"이라는 상호로 시작하였으나, 그 기업의 부실 때문에 주인이 바뀌게 되었다. 지금 이 재즈바를 운영하는 이는 재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 가게를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상호가 현학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데 견주어 내용은 훨씬 자유롭다. 밤마다 이어지는 라이브 무대에는 우리나라의 뮤지션뿐만 아니라 내한 공연을 마친 뛰어난 재즈 아티스트들을 유치하여 애프터 아워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특히 주인의 정성 어린 접대에 뮤지션들이 어쩔 줄 모를 정도로 다감한 면이 있고, 제공하는 음식들도 고급스러우면서도 정갈한 편이라서 근처에 흩어져 있는 젊은 벤처기업인들이 즐겨 찾아 손님 접대를 겸한 편안한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

 

서울 동숭동 청년 문화의 중심에 서 있는 "천년 동안도"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로 알려져 있는데 가게 주인의 철저한 프로의식과 뮤지션들의 분방함을 곁들인 다양한 모습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고 젊은 세대 취향에 결코 반하지 않는 분위기 들을 이 재즈바의 특징으로 들 수 있다. 또 이화여대 후문에 자리하고 있는 "버드랜드"도 오늘을 이끌고 있는 재즈바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요즈음 홍익대 근처에 재즈 피아니스트 신 관웅 씨가 운영하는 재즈바 "문글로우"를 비롯한 라이브하우스들이 성업 중에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핫하우스"와 "페이드 인"이 꾸준한 볼 거리를 제공하고 있고, 그 밖에도 이곳에는 재즈를 전문으로 한다는 바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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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으로 퍼져 가는 재즈바들

 

사정은 지방도 마찬가지다. 부산에서는 맨 먼저 라이브 하우스를 시작한 "몬크"가 있어 수많은 일화와 부산 지방을 거점으로 하는 뮤지션을 보듬고 있고, 요즈음은 부산에서 으뜸의 라이브 재즈를 연주하는 클럽이라고 자랑하는 "포/포"가 성업 중이다. 물론 재즈 팬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재즈 팬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상당히 고무적이다. 물론 댄스 음악에 식상한 진지한 음악 팬들이 새로운 돌파구로 재즈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지방의 특성을 십분 발휘하여 그이들의 정서를 감안하고, 글로벌 뮤직으로서의 재즈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그이들의 노고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한편 대구를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는 재즈바들도 만만치 않다. "올 더 블루"가 있고 "더 코너"가 또한 한몫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구 지방은 부산과 달라 열정적이지는 않지만 느긋한 맛이 있어 같은 영남권에서도 정서를 달리한다는 점이 매우 이채롭다. 그렇다고 이곳만의 재즈가 따로 존재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단지 팬들의 성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호남권은 조금 사정이 다르다. 그이들은 흥이 많고 "끼"가 남달라도 재즈가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글쓴이의 생각으로는 판소리나 남도 육자배기가 너무나 강하여, 다시 말해 토착화된 우리 고유 음악이 너무나 깊게 각인이 되어 있어 그이들의 정서를 뛰어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도, 한을 노래하고, 흥을 안다는 점에서는 재즈와 어떤 동질성을 대입할 수 있는데도 서로의 개성이 절충이 되지 않는 점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밖에도 인천이나 대전, 천안과 신도시들에 재즈바를 표방하는 업소가 많이 생겼는데 한결같이 재즈를 전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팝 음악을 들려주는 이를테면, 껍데기만 재즈바일 뿐이다. 그렇다고 나쁘다 얘기하자는 뜻은 아니고 재즈라는 용어만을 사용하여도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은 정겨움을 느낄 수 있고, 막상 시원한 맥주를 한잔 하고 싶어 찾아갔을 때 짐 모리슨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어떤가? 그 장소가 결국 어떤 구애를 받지 않는 자유스러운 분위기라면 일단 재즈다운 콘셉트는 갖추었다고 보는 것이다. 진정으로 재즈를 사랑하는 이는 음악의 장르에 구분 없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절대적인 자유가 깊은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열병처럼 번지고 있는 우리의 재즈바들을 사회 현상으로 보아야지 재즈의 어떤 본질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무리다. 결국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사실이 훨씬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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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재즈바들 입장료 내야

 
 
미국이나 일본, 유럽처럼 재즈가 정착된...

미국이나 일본, 유럽처럼 재즈가 정착된 나라들은 재즈바의 성격 자체가 우리와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먼저 이들 나라의 재즈바는 거의 입장료를 받는다. 음악의 고하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나라처럼 입장료가 없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된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입장료를 받을 수가 없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상업적인 측면에서 반드시 뮤지션에 내야 할 사례와 함께 장소를 제공한다는 확실한 분위기가 자리잡혀 있다. 입장료 자체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설 만큼이다.

재즈의 메카 뉴욕에는 세계적인 재즈클럽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모두 맨해튼에 있는데 간략하게 안내하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빌리지 뱅가드"가 역시 자연스러우면서도 인간적인 면이 보인다. 값이 싸면서도 뮤지션의 출연이 만만치 않다. 그리고 아직도 뮤지션들 자신이 빌리지 뱅가드에 출연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창업주의 이념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좋은 예이다. 뱅가드에서 라이브 앨범을 녹음하였다면 뮤지션 자신의 긍지로 남을 것이고, 또 명반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금은 상업적인 도회적이고 풍취를 느끼게 하는 재즈바로 "블루 노트"가 있다. 비싼 입장료에 걸맞은 뮤지션들이 출연하고, 뉴욕을 여행하는 재즈 팬들의 순례지이기도 하다. 특히 블루 노트는 여러 곳에 체인을 갖고 있다. 미국에는 라스베이거스에 지난해 말 문을 열었고, 일본에는 도쿄와 오사카, 후쿠오카에 각기 체인을 맺어 독자 경영을 하고 있으며, 뮤지션들은 계약 조건에서 일정만 맞으면 어느 장소든 가리지 않고 출연하고 있다. 이 밖에도 성업 중인 재즈바는 "버드랜드"이다. 이곳 또한 레퍼터리와 뮤지션의 선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상호에서 느끼듯이 찰리 파커를 흠모하는 이름이지만, 재즈사에 등장하는 버드랜드와는 다른 새로운 버드랜드이다. 그러나 옛 영화에 대한 자긍심을 지키겠다는 의지와 용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리디움"은 브로드웨이에 있으면서 좋은 인상을 주는 재즈바이다. 또 얼마 전 문을 연 "더 재즈 스탠더드"도 후발 업소이지만 많은 뮤지션의 출연을 주선하여 명문 대열에 진입하고자 무한히 노력하고 있다. 관객의 서비스와 좋은 레퍼터리로 미루어 보아 훌륭한 재즈바가 될 것으로 짐작된다. 또 엠-베이스파와 아방가르드 뮤지션들의 보금자리 "니팅 팩토리"도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연주와 뮤지션의 질도 파격적이지만 재즈바 자체가 운영하는 레코드사를 통하여 뮤지션을 데뷔시키는 강점도 가지고 있는 멋진 재즈클럽이다.

미국 서해안에도 유명한 재즈바들이 많았으나 이제는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하는 "키스톤 코너"와 오클랜드에 있는 "요시즈"가 명문 재즈바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또 워싱턴 디시에 있는 "블루 앨리"도 빼놓을 수 없는 명문이다. 독특한 흑인 정서가 넘쳐나는 곳이기에 이 재즈바는 남다른 매력이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재즈바들이 있으나 이웃나라 일본의 실태를 간략히 소개한다.

 

도쿄를 중심으로 일본 전국에 재즈바들이 골고루 흩어져 있어 미국 못지않은 재즈 강국이 바로 일본이다. 일본 재즈바들도 거개가 라이브 하우스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말한 뉴욕의 "블루 노트"의 일본 분점 격인 블루 노트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가 있고, 신주쿠 지역에 있는 "피트 인"이 오래 된 바이고, "모쿠바"라는 유서 깊은 재즈바가 있다. 이 밖에도 "더그", "제이" 들이 있고 또 록본기라는 환락가에 "피트 인", "발렌타인", "앨피", "스위트 배이질", "버드랜드", "에스티비" 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키치조지"라는 사찰 주변에 "메그", "펑키", "레드글래스", "에이앤드에프", "아웃 백"이 이름을 지키고 있다. 정말 대단한 나라다. 이밖에도 웬만한 도시에는 재즈바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면서도 이들 재즈바는 정말 전문적이면서도 긍지를 가지고 있고 상업적인 면과는 궤를 달리하는 곳도 찾아볼 수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일본이라는 나라가 미국 재즈를 수입하여 아름다운 포장으로 덧입혀 상품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샘이깊은물> 2001. 10

최 영수/글쓴이는 재즈 칼럼니스트로, 여러 음악 전문 잡지에 재즈 평론을 써 왔다. 음반 디렉터로 활동하며 <파가니니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작품집>을 비롯한 음반을 내기도 했으며 인터넷 음악방송 소리아(sorea.com)에서 재즈전문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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